경제 정책 제안 - 문화 수준을 높이면 경제가 발전한다. - 10. 한국에게 부족한 문화 장르 경제








10-1.
미술적 감상 능력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적 창작력에 대한 경외심이 높다.

 

미술적 창작력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이것이 갑자기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건 아주 간단하게 나의 주변 환경에서 쉽게 접하는 경험에서 나온다.

 

문서를 만들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 때, 여지없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문서들의 아름다움의 정도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나 색깔, 문양 등에 대한 나의 창조적 수준은 매우 지극히 낮다.

 

나는 내가 디자인하거나 골라는 색깔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나의 미적 창조력 부족에 절망하고 산다. 

 

그런데,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상당수가 그렇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파트를 지어도 자를 대고 죽죽 그어서 만든 직사각형 박스의 건물이나 역시 자를 대고 주욱 그어서 제작한 도면으로 만든 도로의 시설물, 도구, 장치, 집기 등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눈에게 주고 있는 그것은 아름다움이 결여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가지지 못한 듯하다.

 

반면에 한국인은 미술과는 반대로 음악적인 수준은 극도로 민감하다.

 

소리에 대해서는 민감한데, 아름다운 소리, 음악에 대해서는 대중적으로 많이 발전되었음을 느낀다.

 

소리가 나쁘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소리의 측면에서 쾌적한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미적인 측면에서 이름답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둔하다. 

 

우리나라는 소음이 적은 자동차가 마케팅에 맹 중요한 요소이지만 외국에서는 소리는 덜 중요한 요소다. 

 

오히려 조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마케팅 걸림돌이라고 생각되어 여기도 인위적으로 엔진 소음을 발생토록 연구하고 있을 정도이다.

 

자판기에서 꺼내는 종이컵의 디자인이나 라면 봉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주는 검정 비닐 봉지, 조잡한 사각형 컴퓨터 책상에 쉽게 만족하니까, 그런 물건들이 팔린다.

 

그런 물건들은 정말로 값이 싸며, 그래서 시장은 금액적으로 적어지며, 사회의 모습은 조잡해진다.

 

된장 뚝배기는 디자인이 들어가 있지만 양은 냄비에는 디자인이 들어 있지 않다.

 

미술적인 디자인의 차이는 선진국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적인 미국인들의 미적 수준은 유럽인들과 비교하면 커다란 차이가 난다. 

 

대중적인 미국인들의 미적 수준은 우리의 수준과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없지만, 유럽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프랑스가 엄청난 기술 산업 강국인 독일과 비교해서 소득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 

 

그들에게는 문화 수준이 추가로 부가가치를 증대시켜 주는 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0-2. 철학

 

한국인의 철학에는 문제가 있다.

 

일단 한국인의 사회문화는 철학적이지 않다. 

 

아무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철학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주장을 하면 사람들은 철학적이지 않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어도(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그것이 꼭 중요한 것인가를 의문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 철학적으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철학적으로 또는 사회문화적으로는 중요할 지 몰라도 경제가 발전하는 데, 무슨 연관이 있는가를 질문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열한 고민 끝에 스스로에게 내린 가치관이라기 보다는 주위에서 소개된 것들이나 알려져 있는 것들을 취사 선택해서 짜깁기 오려낸 이미지 조합 같은 가치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 강압적으로 주입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높은 수준의 철학적 가치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적 가치관을 설명해야 하는데, 일단 철학적 가치관은 이미 우리가 수도 없이 배우고 소개되어 있다. 

 

일반인들은 이들의 취사 선택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무장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철학적 가치관을 자신이 고민해서 갖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주위에서 이야기한 것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을 따라서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자신이 갖고 있다고 하는 가치관은 그것이 일반적인 것들이고, 사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런 것들의 조합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일단 철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본인은 자신도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철학적 가치관을 확립한 사람들은 변동성이 큰 사회에서 가치가 높은 일들에 대해 지지한다.

 

이런 일들이 왜 중요한가 하면, 철학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며, (사실은 별로 고민한 적이 없으며, 정담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을 뿐이다.), 매우 중요한 결단 상황이 생기기 전에는 시험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외계인이 침략해서 지구를 지키는 만화 같은 일에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유엔에 가면 실제로 그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으며, 많은 국제 단체가 있다. 이들 대부분이 단지 직장을 하나 구하기 위해서 유엔에 공채 모집에 시험보고 들어가서 직장 생활하듯이 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았고, 적극적이었으며, 일정 부분 봉사 정신과 희생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돈 안 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으며, 관련 정보에 민감하며, 그와 관련 사람들을 사귀고 있었던 것은 고민했던 결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적극적인 가치관은 고민을 동반한 철학적 가치관을 추구했던 결과이며, 젊은 시절에 적어도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왜 살아야 하나?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만이 가진다. 

 

사실 젊은 친구들이 이런 고민을 하지만 생산적 결과인 자신의 철학적 가치관을 성립시킨 경우는 매우 적다.

 

사회문화적으로 한국은 보편적인 철학에 대해서 매우 약하다.

 

한국에서는 보편적인 철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학문적 철학이나 이념적 철학들만 일반인들에게 소개된다.

 

일반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철학은 그저 철학이 그려낸 사상들만 소개할 뿐, 사람을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배움이 없다. 

 

그러다 보니 철학적인 방식의 사유의 결과나 검토 결과 또는 토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보편적 철학이라는 것이 알맞게 정리되어 매우 보기 좋게 사람들에게 학교 공부처럼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런 것이 없다.

 

 

 


(다음 포스트에는 "11. 문화 정책을 위한 아이디어"가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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